• 토. 8월 30th, 2025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 위화도 회군 완전정리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1. 위화도 회군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1. 위화도 회군

위화도 회군(1388)은 고려 말, 요동 정벌을 위해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도달한 이성계가
군을 돌려 개경으로 회군한 사건입니다. 이 결정은 최영 중심의 전쟁정책을 무너뜨렸고,
곧바로 정권 교체 → 개혁(과전법) → 조선 건국(1392)으로 이어졌습니다.
본 글은 사건의 배경·전개·결과를 한눈에 정리하고, 시험에 자주 나오는 대표유형 문제
“채점 기준에 맞춰” 단계적으로 풉니다.



핵심 한눈 요약

  • 배경: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 → 고려 조정의 요동정벌론(최영) 대두
  • 전개: 1388년 이성계 출정 → 위화도에서 회군(사불가론) → 최영 축출
  • 결과: 정권 장악, 과전법(1391) 실시, 공양왕 옹립 → 조선 건국(1392)
  • 의미: 대외 정벌에서 내치(민생·토지개혁)로 국정 기조 전환, 신흥무인·신진사대부 세력의 득세

요동정벌론(최영) vs 회군론(이성계)

구분 요동정벌론(최영) 회군론(이성계)
전략 기조 대외공격(공격적 외교) 내치 우선(민생·병력 보존)
명분 철령위 설치에 대한 대응 전쟁 사불가론(장마·군량/역병·후방 왜구·명과의 충돌 위험)
정치 효과 구세력 결집(단, 민심 이반) 최영 축출 → 신흥무인·신진사대부 득세
향후 흐름 정벌 지속 시 국력 소진 우려 토지개혁(과전법) → 조선 건국

메모: 회군은 단순한 ‘출정 취소’가 아니라, 정책 전환 + 권력 교체를 동시 달성한 정치 군사 사건입니다.

타임라인으로 보는 위화도 회군

  • 1387~1388 명, 국경 방어 정비(철령위 문제) → 고려 조정의 요동정벌 결정
  • 1388. 5월 이성계 출정, 위화도 도착 → 사불가론 제기, 회군 결단
  • 회군 직후 최영 축출·처형, 정국 주도권 이동
  • 1389~1391 정권 기반 정비, 과전법(1391) 실시
  • 1392 공양왕 폐위, 조선 건국 (태조 이성계)

회군의 논리 — 이성계의 사불가론

  1. 장마와 수공 위험 — 강수량·지형 불리, 도하전에서 대패 가능성
  2. 군량·전염병 위험 — 장기 원정에 필요한 보급·위생 미비
  3. 후방의 왜구 — 본토 방어 공백 발생 우려
  4. 명과의 직접 충돌 — 외교적 명분 빈약, 장기전 시 국력 소모

→ 결론: 내치 우선·병력 보존·국가 재정비가 급선무였다.

결과와 의미

  • 정치: 구권력(최영·구신권)의 붕괴, 신흥무인·신진사대부(이성계·정도전·조준 등) 등장
  • 경제: 토지 제도의 과전법으로 재정·군역 기반 재편 → 권문세가의 경제력 견제
  • 외교·군사: 대정벌 노선에서 벗어나 실리 외교, 국방은 체계적으로 정비
  • 국가 체제: 유교 이념을 기반으로 한 새 왕조(조선) 성립, 수도 한양(1394) 천도



대표유형 ① — 기본 개념 판단

다음 중 위화도 회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요동정벌군이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 교체의 계기가 되었다.
  2. 회군 이후 과전법이 시행되는 등 개혁이 추진되었다.
  3. 회군은 최영의 권력을 강화하고 요동 정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4. 회군의 명분 중 하나는 후방의 왜구 위협이었다.
  5. 회군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정답: ③
풀이(IRAC)
  • Issue — 회군의 결과가 누구에게 유리했는가?
  • Rule — 회군은 최영 세력을 제거하고 신흥 세력의 집권을 낳았다.
  • Application — ①·②·④·⑤는 사실에 부합, ③은 역사적 사실과 반대.
  • Conclusion — ③이 오답.

함정 주의: “회군=전쟁 승리”가 아니다. 전쟁 중단·정국 전환이다.

대표유형 ② — 사불가론 적용

빈칸 채우기 — 회군 사유로 보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1. 장마기 도하전 수행의 위험
  2. 군량 부족 및 역병 가능성
  3. 후방의 왜구 위협
  4. 원 명나라의 내부 반정 지원 약속
정답: ④
풀이(체크리스트)
  1. 환경 — 계절·지형 불리(①)
  2. 보급·위생 — 군량·역병 리스크(②)
  3. 안보 — 후방 공백 위험(③)
  4. 외교 — ④는 사실성이 낮은 진술로, 회군 논리와 무관

결론: 회군은 실무·안보·외교를 종합 고려한 결정이었다.

대표유형 ③ — 인물·정책 연결

다음 인물과 정책·사건의 연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최영 — 요동정벌 추진
  2. 이성계 — 위화도 회군
  3. 조준 — 과전법 주도
  4. 정도전 — 새 왕조의 통치 이념 정비
정답: ①, ②, ③, ④ (전부 정답)
풀이(연결 고리)
  • 최영: 대외정벌 노선의 상징
  • 이성계: 회군 단행, 정권 장악
  • 조준: 과전법 설계로 재정·군역 기반 재편
  • 정도전: 유교 국가 체제 구상, 새 왕조의 기본 틀 마련
대표유형 ④ — 서술형(핵심 의미 3줄 정리)

위화도 회군의 역사적 의미를 3줄 이내로 서술하시오.

채점 기준에 맞춘 예시 답안
  1. 대외정벌 중심 정책을 중단하고 내치·민생 중심으로 전환하였다.
  2. 구세력을 축출하고 신흥무인·신진사대부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3. 과전법을 통해 국가 기반을 재편하여 조선 건국으로 이어졌다.

오개념 교정 — 시험장 함정 피하기

  • “회군=전투 승리” → 아님. 회군은 전쟁 중단과 권력 교체의 정치적 결정.
  • “회군 직후 조선 건국” → 아님. 개혁과 권력 정비(과전법) 과정을 거쳐 1392년에 건국.
  • “과전법=토지 몰수 제도” → 아님. 국가가 토지 수조권을 재분배해 재정·군역 기반을 정비한 제도.

학습 팁 — 머릿속에 그리기

  • 지형 상상: 압록강 하류의 섬(위화도), 장마철 강폭·흐름, 도하 위험
  • 지도 화살표: 개경 → 위화도(출정) ↶ 개경(회군)
  • 인물 라인: 최영(정벌) ↔ 이성계(회군) → 조준(과전법)·정도전(체제 구상)

위화도 회군 10초 요약

  • 위화도 회군(1388) = 전쟁 중단 + 권력 교체 + 개혁의 출발
  • 사불가론: 장마·군량/역병·후방 왜구·외교 위험
  • 결과: 최영 축출 → 과전법(1391)조선 건국(1392)

새 글 알림과 자료는

곰쌤 역사 단원 정리 카페
에서 받아보세요.

 

곰쌤의 일상 스토리 블로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