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사대부는 몽골 간섭 약화와 왜구·권문세가의 폐단 속에서 성장한 성리학 지식 엘리트입니다.
그러나 개혁 방향과 속도를 두고 온건개혁파(정몽주·이색)와 급진개혁파(정도전·조준)로 갈라졌고,
위화도 회군(1388) 이후 그 균열은 정권 교체(1392)와 왕자의 난(1398)까지 이어지며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의 동력이자 내적 긴장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분열의 배경·쟁점·전개·결과를
한눈에 정리하고, 대표유형 문제를 “채점 기준에 맞춰” 단계적으로 풉니다.
핵심 한눈 요약
- 배경: 권문세가 겸병·불교 특권·왜구·재정 파탄 → 성리학 기반 신진사대부 성장
- 분열: 온건개혁파(고려 왕조 존속·점진 개혁) vs 급진개혁파(왕조 교체·토지·불교 대개혁)
- 전개: 위화도 회군(1388) → 정몽주 제거(1392, 선죽교) → 조선 건국 → 왕자의 난(1398)
- 의미: 고려 멸망의 직접 동력 + 조선 초기 통치구조(왕권/재상권) 설계 논쟁의 출발
온건개혁파 vs 급진개혁파 — “왕조 존속인가, 교체인가”
구분 | 온건개혁파 | 급진개혁파 |
---|---|---|
왕조관 | 고려 유지 + 점진 개혁 | 왕조 교체(신왕조 수립) |
토지개혁 | 제도 정비·폐단 시정 위주 | 과전법 등 구조개편으로 권문세가 억제 |
불교 정책 | 점진적 개혁(지나친 특권 억제) | 억불숭유 강력 추진 |
정치 연합 | 기존 관료·명망가와 협력 | 신흥무인(이성계)과 결합 |
대표 인물 | 정몽주, 이색, 길재 | 정도전, 조준, 남은 |
메모: 두 파 모두 성리학을 공유했지만, “왕조 존속 vs 교체”와 개혁의 강도에서 갈렸습니다.
타임라인으로 보는 신진사대부의 분열
- 1370s~1380s 성리학 확산·신진사대부 성장, 권문세가 폐단 비판
- 1388 위화도 회군 → 정국 주도권이 급진개혁파·신흥무인으로 이동
- 1391 과전법 실시(급진개혁파 설계) → 권문세가 경제기반 약화
- 1392 선죽교에서 정몽주 제거 → 조선 건국
- 1398 제1차 왕자의 난 — 정도전 일파 축출, 왕권 강화 방향으로 선회
분열의 논리 — 쟁점 4가지
- 왕조 문제 — 고려 존속(온건) vs 교체(급진)
- 토지·재정 — 부분 손질(온건) vs 과전법으로 구조개편(급진)
- 종교 정책 — 불교 특권 완화(온건) vs 억불·숭유(급진)
- 권력구조 설계 — 건국 직후 재상중심 질서(정도전) vs 강한 왕권(태종으로 수렴)
→ 결론: 같은 성리학 진영이라도 정치연합과 제도설계의 선택에 따라 길이 달라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 정치: 온건파의 몰락(정몽주 사망)·급진파 집권 → 건국 직후 왕권 vs 재상권 갈등 심화
- 제도: 과전법·의정부 체제 등 초기 틀 마련, 1398년 이후 왕권 강화로 운영 방향 수정
- 사상: 성리학 국가 확립, 불교 영향력 축소
- 연결: 이후 15~16세기 훈구 vs 사림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상 갈등의 전사(前史)
대표유형 ① — 기본 개념 판단
다음 중 신진사대부의 분열(온건 vs 급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온건개혁파는 고려 왕조의 존속을 주장하며 점진적 개혁을 지향했다.
- 급진개혁파는 신흥무인과 연합하여 왕조 교체와 강력한 토지개혁을 추진했다.
- 온건개혁파의 대표는 정몽주·이색, 급진개혁파의 대표는 정도전·조준이다.
- 두 파는 모두 성리학을 공유했으나 개혁의 속도·강도·연합 파트너가 달랐다.
- 온건개혁파가 과전법을 설계·시행했고 급진개혁파는 전시과 유지에 머물렀다.
정답: ⑤
풀이(IRAC)
- Issue — 과전법을 주도한 세력은 누구인가?
- Rule — 급진개혁파(정도전·조준)이 과전법을 설계·추진했다.
- Application — ①~④는 사실 부합, ⑤는 정반대 진술.
- Conclusion — ⑤가 오답.
함정 주의: “성리학=하나의 정치 노선”이 아님. 정치연합·제도설계 선택이 갈랐다.
대표유형 ② — 사건 흐름 연결
다음 사건을 흐름대로 올바르게 나열한 것은?
- 조선 건국 → 위화도 회군 → 과전법 실시 → 왕자의 난
- 위화도 회군 → 정몽주 제거 → 과전법 실시 → 조선 건국
- 위화도 회군 → 과전법 실시 → 정몽주 제거 → 조선 건국 → 왕자의 난
- 위화도 회군 → 과전법 실시 → 조선 건국 → 왕자의 난
정답: ④
풀이(체크리스트)
- 1388 위화도 회군
- 1391 과전법 실시
- 1392 정몽주 제거(선죽교) & 조선 건국 — 실제로는 같은 해, 건국 직전/직후
- 1398 제1차 왕자의 난
결론: 핵심은 회군 → 제도(과전법) → 건국 → 내분의 순서.
대표유형 ③ — 인물·노선 연결
다음 인물과 노선의 연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 정몽주 — 고려 왕조 존속·점진 개혁
- 정도전 — 왕조 교체·재상중심 질서 구상
- 조준 — 토지개혁(과전법) 설계
- 이색 — 성리학 보급·온건 개혁
정답: ①, ②, ③, ④ (전부 정답)
풀이(연결 고리)
- 정몽주: 고려 충절의 상징, 온건 개혁의 대표
- 정도전: 신왕조 설계자, 재상중심(의정부 서사) 구상
- 조준: 과전법 실무 설계
- 이색: 성리학의 학문적 기반 제공, 온건파의 사상적 스승
대표유형 ④ — 서술형(핵심 의미 3줄 정리)
신진사대부의 분열이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 과정에 미친 영향을 3줄 이내로 서술하시오.
채점 기준에 맞춘 예시 답안
- 온건·급진의 분열은 왕조 존속/교체를 둘러싼 노선 대립을 낳았다.
- 급진파의 집권으로 과전법·억불 등 대개혁이 단행되어 조선 건국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 건국 직후에는 왕권 vs 재상권 갈등으로 내분(왕자의 난)이 발생하며 운영 방향이 조정되었다.
오개념 교정 — 시험장 함정 피하기
- “온건=불교 옹호, 급진=유교” → 아님. 둘 다 성리학 기반이며 차이는 개혁 강도·정치연합.
- “과전법은 온건파의 점진 개혁” → 아님. 급진파의 구조개혁 성격.
- “신진사대부 분열=훈구 vs 사림” → 아님. 이는 후대(15~16세기)의 구도.
- “왕자의 난=신진사대부 vs 권문세가” → 아님. 건국 후 왕권과 재상권의 충돌 성격이 큼.
학습 팁 — 머릿속에 그리기
- 축: 고려 말 왕조 존속/교체 축 + 개혁 강도 축을 십자축으로 정리
- 지도: 개경(고려) → 위화도 ↶ 개경 → 한양(조선) 화살표로 흐름 그리기
- 인물 라인: 이색·정몽주(온건) ↔ 정도전·조준(급진) → (건국 후) 태종으로 권력 구조 재정렬
신진사대부의 분열 10초 요약
- 핵심 : 온건(존왕·점진) vs 급진(왕조 교체·대개혁)
- 흐름 : 회군(1388) → 과전법(1391) → 건국(1392) → 왕자의 난(1398)
- 의미 :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초기 권력 구조 형성의 핵심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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